상고와 묵상
믿음에 관하여: 히브리서가 말하는 종말론적인 믿음 본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10:19에서부터 12:13까지 이어지는 긴 담화의 한 가운데에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짧고 명료해서 많은 성도들이 외우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우리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반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속죄"에 대한 믿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문맥을 살펴볼 때에, 여기서 등장한 "믿음"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가능성은 옅어 보인다.
도입부인 10:19(그리고 3:1)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담화는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에게 또다시 그리스도의 속죄를 묵상하고 믿으라고 권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속죄는 이미 지나온 것이고, 그들 앞에는 "구원 그 이후"의 삶이 놓여 있다.
그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이 담화는 믿음(10:22), 소망(10:23), 사랑과 선행(10:24)을 말한다. 그러나 당면한 삶에는 고난과 싸움, 비방과 환란(10:32-33)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내(10:36)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내가 그냥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첫째로, 인내는 무언가를 두려워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상관이 무서우면 얼차려를 참아내게 된다. 둘째로, 인내는 무언가를 기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가 식욕을 참고 다이어트를 할 때는, 건강이라는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체 성도는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인내하기 위해 두려워할 것과 기대할 것은 무엇인가. 두려워할 것은 심판(10:26-31)이고, 기대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10:37)인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이 두 가지는 같이 일어난다. 그 날은 가까워지고 있지만(10:25), 아직 오지는 않은 미래의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기는 하나, 아직 보이지는 않는다(11:1). "정말로 그 날이 올까?"라는 의심이 들만한 상황인 것이다.
히브리서가 "믿음"을 언급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히브리서 10장은 "믿음"을 제시하며 하박국을 인용한다(히 10:38-39; 합 2:3-4). 하박국의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박국이 예언한) 묵시가 정한 때에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다. 그리고는 11장에서 바라지만 보지 못했던 미래가 분명히 도래할 것을 믿었던 구약의 여러 선진들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다.
요컨데, 히브리서의 이 담화는 심판과 재림의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속죄"에 대한 믿음에 대한 말씀을 꽤 많이 듣는다. 당연히 교회는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때때로 그 말씀은 구원의 과정을 거친 성도들에게도 구원의 감격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종종 필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만 방점을 찍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은 결코 구원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나라의 완성에 이를 것이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이 묵상을 마치면서, 이 외우기 쉬운 말씀이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읊조릴만한 구절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외우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좀더 유익할지도 모르겠다: 믿음은 재림의 실상이요, 심판의 증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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